권동현의 작업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미적 거리를 극적으로 좁힌다. 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 시리즈(2011-2013)는 재개발로 의해 강제 철거되는 건물의 벽에 남겨지는 철거 표식을 가리려는 의도로 시작된 작업이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 ‘위장무늬’의 목적은 점차 버려진 지역의 폐허처럼 몰락한 모습에 마치 화장을 하듯 순수한 미적 형식을 가미하는 것으로 옮아갔다. 이 작업에 나타나는 미는 작가가 창조한 것이라면, 모각: 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시리즈(2012-2013)에서 조명받는 아름다움은 그가 단지 발견해서 빌려 온 것이다. 여기서 권동현은 길을 걷다 마주친 대상에서 보이는 순수한 조형미를 조각으로 본떠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작은 조각품은 달동네 골목에서 볼 법한, 포장되지 않은 거친 형태의 계단을 재현한다. 일상적 언어와 통념을 기준으로 본다면, 작업에 일견 나타나는 이미지와 작가가 지향하는 목적 사이에는 현저한 간극이 있다. 물론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 곁에 종교가 있는 것처럼,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도 천상과의 연결 고리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순수한 아름다움? 생존이 당면 과제인 곳에서 미학 이론서들 속에나 존재할 듯한 미적 이상은 아마 무의미한 것이다. 이런 모순을 암시하듯, 그의 작업들은 그 심플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위화감과 거기서 오는 떨린을 간직한다. 그러나 이 작가의 작업에서 남루한 형식과 순수한 내용을 결합하는 것은 그의 자의적인 논리가 아니다. 인간은 때로 모순된 것들을 동시에 욕망한다. 집이 철거되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근심하면서도, 더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재개발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사회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에 늘 비판적 관심을 가지면서도, 순수한 조형미에 끌려 거기에 천착하는 예술가도 있다. 철학서나 추상 예술에서 등장하는 모순은 학생들의 공허한 논쟁거리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한 인간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실천적 문제로서 던져진 모순은 절박하고 답 없는 번민을 가져온다. 권동현의 작업은 후자를 나타낸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관념적 시뮬레이션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철거 지역이나 골목의 삶에 깊숙이 발 들이는 한편, 다시 그 속에서 조형미를 추구하는 여절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역설적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미적 형상은 비록 희미하지만 구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들은 일순 거리가 사라진 두 세계가 부딪혀 생긴 조용한 종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