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RANDOM DIVERSITY
- 8. 1 ~ 2021. 9. 30
*코로나로 인한 사전 예약제 관람 운영
– 전시 소개
뉴노멀 시대에 기존의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들과 (감정, 감각, 언어 등과 같은) 관념의 표상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천영환 작가는 범주화된 인식 속의 고유한 개별성과 다양성을 탐구한다.
‘랜덤 다이버시티’가 가시광선의 파장으로 색을 이해하는 인간과, 빛의 전기신호를 색으로 이해하는 비인간(AI) 사이의 협업이었다면, ‘뉴 랜덤 다이버시티’는 향후 시각을 비롯한 후각, 미각, 청각 등 또 다른 감각으로의 연구 확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작가는 감각과 인식, 그리고 감정을 알고리즘으로 혼합하여,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시키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앙상블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모색한다.
이전 『After All This Time』 전시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지키고 간직해야 할 우리의 기억과 감정은 무엇이어야 할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백신 보급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인지 회상하며, 다시 자신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자 한다.
‘기억’은 ‘감각’으로 만들어진다.
천영환 작가는 감정을 *디코드(Decode)하며,
지나간 기억 속에서 이 시간 이후 우리에게 생긴 ‘새로운 감각’은 무엇인지 묻는다.
*디코드(Decode) : 암호화,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해체하는 과정
– 전시 비평
### 감정의 형태: 새로운 순간의 새로운 감정
안진국(미술비평가)
감정을 만질 수 있을까? 색깔이 있다면 어떤 색일까? 소리는 있을까? 맛은? 냄새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을까? 감정은 만질 수 없고 색깔도 모르고 맛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간직할 수는 있다. 그 느낌을 일기장에 적거나 메모장에 기록하면 된다. 말로 녹음해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기장과 메모장에 적거나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은 ‘언어(language)’를 통한 결과다. 언어(문자 언어/음성 언어)는 공동체 안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효율적인 체계로, 감정을 아주 쉽게 몇 가지로 범주화(categorization)한다. 그래서 감정의 언어화는 언어의 틀에 맞추기 위해 수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누락한다. 복잡하고 모호하지만, 그 때문에 더 풍부한 감정의 갈래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언어에 의해 빈약하지만 확실한 몇 개의 단어로 압축된다. 이렇게 감정은 훼손되고 압착된다. 불변하는 단어 몇 개로 감정이 박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본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어떤 사건이 촉발된 당시의 감정과 시간이 지난 후 그 사건에 대한 감정은 같을 수 없다. 더 세부적으로 시간을 쪼개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그 이후로 순간순간 감정은 계속 변한다. 절대 고정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새로운 순간들인 것이다(작업노트).” 천영환이 고민하고 탐색하고 있는 지점은 여기다. 그는 매 순간 변하는 감정을 언어로 박제하지 않으면서 예술작업으로 현상계에서 실체화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개인의 암묵지**
겉보기에 천영환의 작업은 무척 단순해 보인다. 그가 지금도 여전히 연구하고 있는 <Random Diversity>(2020~)의 경우, 어떤 감정을 기술 장비의 도움을 받아 색채로 변형하는 것 정도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다. 마치 ‘열정’은 빨강, ‘푸르름’은 초록, ‘시원함’은 파랑 등 사회적 통념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감정의 상태를 색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영환의 작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니, 복잡하고 쉽지 않다. 그가 다루는 것이 감정을 촉발하는 사람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의식의 한 영역이다.— 의식은 인간 지능의 핵심으로 경험을 통해 체화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지(暗默知, implicit knowledge)다. 경험은 삶의 과정에서 쌓이는 것으로, 여러 사람이 똑같은 순간(moment)을 맞이하더라도 개개인의 이전 생의 경로에 따라 그 순간은 전혀 다른 경험으로 기억된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변모하는 생의 경로를 따라 체화된 경험과 기억도 거듭재구성된다. 따라서 의식은 사람마다 다르며, 한 개인의 의식이라도 고정되지 않고, 순간순간 변모한다. 감정 또한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과학자들은 의식의 실체를 알기 위해 두뇌의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기제를 연구하고 분석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을 통해 흥분 상태를 설명하지만, 왜 흥분 상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원인과 정도가 다르고, 그로 인해 그 선택지가 너무 다양하게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식은 객관적 성질(생리적 기제)과 주관적 성질(개인의 다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동공의 확대나 심박수, 뇌파의 변화, 뇌혈류 속도 등의 생리적 현상을 통해 감정의 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마다 뇌 속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생리적 현상에 따른 감정의 상태를 하나로 수렴해서 설명할 수 없다. 천영환은 이렇게 유형화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개인의 감정 상태를 예술 작업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감상자가 특정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릴 때의 뇌파와 뇌혈류(Cerebral blood flow)의 변화 상태를 측정해서 그 측정값을 토대로 감정을 실체화한다.
이 변환 과정은 AI 가 맡는데,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통상적인 AI 는 특정 알고리즘을 학습해 범주화된 결괏값을 출력한다. 하지만 작가가 설계한 AI 는 특정 알고리즘이나 공통의 훈련 데이터가 없이 개개인의 특성에 집중하는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다. “‘슬프다’는 감정이니까 ‘보라색’으로 표현”하는 식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의 감정(신호)에 제일 크게 반응하는 색을 찾는 방식”이다(작업노트). 그로 인해 작가의 작업을 통과한 감상자의 감정은 타인과 통용될 수 없는 특정 개인의 독특한 어떤 것으로서 실체를 갖게 된다.
**순간들로 재형성된 다양한 감정**
천영환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같은 뇌파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경험과 기억조차도 시간에 따라 그 감정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단순히 개인의 특정 감정을 실체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있음을 시사한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은 개개인의 다름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을 초과한다. 천영환은 개개인이 지닌 독특함뿐만 아니라, 한 개인 안에 존재하는 고정되지 않은 감정의 다양성까지 드러내고자 한다. 이것이 그가 감정을 실체화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의식(좁게는 감정)이 암묵지로 존재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느낌의 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의 주관적 성질이 감각질(qualia)이다. 감각질은 기능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분명하고 유동적이다. 따라서 인간 전체의 감각질을 유형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감각질이라 하더라도 그 내부에 있는 다양한 주관적 특성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규정하거나 고정할 수 없다. 감각질 안에서 감정은 끊임없이 변모한다. 따라서 천영환의 작업에서 어떤 한 사람이 같은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리며 뇌파와 뇌혈류의 움직임을 측정하더라도 측정할 때마다 그 감정은 달라지며, 감정을 실체화한 결과도 다르게 된다. 쉽게 말해서 똑같은 경험을 떠올리더라도 1 분 전과 지금과 1 분 후는 (미세하게라도) 그 감정이 다르며, 그에 따라 감정을 실체화한 색상이나 소리, 향기 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감상자는 특정 경험이나 기억에 대한 ‘특정 순간’의 감정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물질로 갖게 된다.
작가는 감정의 유동성을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그는 세상의 관념으로 고착화(암호화, 부호화)된 감정을 해체하는 디코드(decode)를 통해 경험이나 기억이 다양하고 새롭게 감각될 수 있음을 예술적 방식으로 알려준다. 이번 전시 ⟪NEW RANDOM DIVERSITY⟫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면서 감정의 시각화를 넘어서 후각, 미각, 청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의 출발선이다. 앞으로 우리는 천영환의 실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 작가 소개
**천영환 Younghwan Cheon**
천영환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학석사를 취득하고, 새로운 기술 변화의 스펙트럼과 사회적 맥락의 조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AI, 인간, 로봇으로 구성된 뉴미디어 아트 그룹인 ‘Discrete’에서 인간을 담당하며 ‘AI-Made’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2018년 기술을 이용한 사회혁신 저변 확대에 대한 공헌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디지털 사회혁신 유공 표창을 수여 받았고, 2020년 우란문화재단의 우란이상 시각예술연구 전시인 <<RANDOM DIVERSITY>>를 진행했으며, 2021년 예술의전당 ‘내일의 예술展’ 뉴미디어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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